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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스토리

MIRAE Story

여가, 문화, 나눔, 주거 등 시니어를 위한 가치 있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린왕자'의 은퇴 후? 윤익영 교수의 '곱게 늙어가는 법'

2024-04-12

'어린왕자'의 은퇴 후? 윤익영 교수의 "곱게 늙어가는 법"

 
윤익영 1
입춘이 지나도 날씨의 감각은 여전히 겨울에 가깝던 2월의 어느 밤. 흥미로운 모임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곳은 구비구비 고갯길을 지나 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고풍스럽게 잘 꾸며진 갤러리였다. 빼꼼 문열고 들여다보니 노신사 한분이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얼굴엔 열기가 가득하고.
 
진심으로, 그 공간은 어느 대학 강의실보다 열의에 차있고 학생들은 교수 말 한 마디에 웃고 감탄하며 그의 강의에 오롯이 집중했다. 어둑한 저녁 공기가 잊혀질 정도로 뜨겁던 그 공간이 더욱 인상적인 건 강의실을 꽉 채운 수강생의 대부분이 시니어라는 점. 가장 젊은 연령층이 50대 아닐까, 싶은데 교실 온도는 청년의 체온 못지 않았다.
 
윤익영 교수의 서양미술사 강의 현장이었다. 양평읍에 위치한 어울림센터에서 진행되지만 이날은 특별히 다소 한적한 강하면의 한 갤러리 카페에서 종강파티가 열리고 있었던 것.
 
그의 오랜 수강생은 윤 교수를 '어린 왕자'에 비유했고, 또 다른 수강생은 '미술 이야기꾼'이라고 불렀다. 다들 어렵게만 느껴졌던 미학의 세계를 둘러싼 장막이 그 덕분에 한꺼풀씩 벗겨진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윤익영 2
윤익영 교수는 1952년생 서울태생으로, 프랑스 파리의 팡테옹소르본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아 창원대 미술학과 교수,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한국미술평론가협회 감사,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한 미술비평계의 거장이다. 퇴임 이후 그는 양평에서 서양미술사 강의를 수년째 진행해오고 있는데, 늘 열띤 그의 강의를 경험한 이들은 하나같이 "가장 이상적인 은퇴 이후 삶을 살아가는 분"이라고 말한다.

고령화 속도가 가팔라진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들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는 가운데, 윤 교수의 발자취를 쫓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종강 파티로부터 약 한달 뒤 봄꽃이 흐드러진 날, 그를 다시 마주했다. 백발의 신사에게는 일종의 기품이 흘렀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빛은 개구쟁이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총기로 가득했다.
 
윤익영 3
Q. 원래 서울에서 생활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양평으로 이주하게 된 시점이 언제인가.

19년 전이다. 아내가 서양 화가인데 그림 그릴 공간이 부족해 작업실 짓기 마땅한 곳을 찾다 양평으로 이주하게 됐다. 워낙 화가들도 많이 사는 곳이라 이곳으로 오게 됐다.

당시에는 퇴직하기 전이었고 직장이 창원(창원대)이라 월요일에 창원에 가서 금요일까지 있다가 주말은 양평에서 지냈다. 정년 퇴직할 때 까지 그렇게 살았는데, 그럼에도 이곳이 좋았다.

Q. 미술사 강의 모임의 첫 시작이 궁금하다.

올해로 벌써 4년째다. 당시엔 퇴직을 했으니 출퇴근에서 자유롭고 또 양평에는 워낙 작가들이 많다. 작가들은 작업을 한다고 전부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다. 그러다보니 점점 대화도 없어진다. 일상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작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지적 정보나 문화사적 대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대화를 할 상대도 분위기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미술적 테크닉은 점점 늘지만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작가들의 잠재되어 있는 창조적 상상력을 끄집어내고 자극을 주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보니 역시 대화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대화를 하기 위해 처음에는 양평문화사랑방을 만들자 했다. 동네 골목 카페에서 둘 셋 모여 앉아 커피 마시며 일상의 대화가 아닌 학교에서 가르치고 연구해 온 내용들을 다시 정리하면서 대화를 나눴었다. 그걸 매주 2시간씩 했었는데 그게 발단이 되었다.
 
윤익영 4
Q. 현재는 작가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입소문으로 모여 현재 거의 서른 명 가까이 모여있다.
 
처음부터 작가들로만 구성 되지는 않았다. 작가들 서너명과 퇴직하신 병원 원장 부부, 한양대 문창과 교수들 등등. 그렇게 다섯이 1년을 끌고 가다 그분들을 통해 소개를 하다보니 작가분들은 서서히 숫자가 줄고 아닌 분들의 수가 늘어났다. 광고나 홍보를 할 필요가 없고 의지도 없었다. 그런데 (수강생들이) 지인들을 소개하면서 많이 늘어났다.
 
Q. 수강생들의 강의에 대한 애정이 엄청 나더라.
 
사실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인데, 벌써 2년째 듣고 계신 분들도 절반이다. 여기에 오시는 분들이 어떤 분들일까 생각해보다가 어느 날 내가 그랬다. 바로 '지적 낭만 주의자들이 찾는 곳'이라고. 여기서 뭐 현실의 도움이 되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지적 호기심이 있고 낭만이 있으신 분들, 인생을 창의적으로 디자인하시는 분들이 오신다. 가만히 따져보면 개개인이 시간적 여유가 있지 않다. 오히려 바쁘신 분들이다. 그런데도 저녁 시간에 와서 늦게까지 있다가 가신다. 서울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고. 정말 멋있는 분들이다
 
한 번은 그 분들께 이렇게 말했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제 앞에 앉아계시는데, 이 관계를 생각해봤더니 나는 브루주아고 여러분은 노블이다. 노블한테 브루주아가 브리핑을 하는 마음으로 수업준비를 해서 갖고 왔다'라고.
 
Q. 뭐랄까. 이 미술사 강의실에 오신 분들을 보면 우리가 흔히 나이 들어 시간이 좀 나면 해보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보지 않나. 그러나 정작 생각만 하고 실현하기란 쉽지 않은데 그것들을 정말 실천하고 있는 현장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그분들이 여기 오시는 이유는 지식인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분들은 이미 지식인들인데 지식인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이래저래 지식인이 된다.
 
그러나 지식인으로는 부족하다. 나이가 들며 교양인이 되어야 한다. 교양인이 되면 어떤 덕목이 생기게 될까를 묻는다면, 교양인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에 균형이 잡혀 있다. 또 균형 잡힌 판단을 하니 교양인이 될수록 관대해진다. 즉, 이분들은 관대해지고 싶어서 오시는 분들인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교양인이 되고 교양인이 되니 관대해지는 것. 나이 들면서 그것을 못하면 외롭고 씁쓸하고 슬퍼진다.
 
Q. 이 공동체 안에서 수강생들끼리 주고 받는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분들 하나하나가 대단한 전문가들이다. 아무 말 않고 가만히 계시지만 나름 그 분야의 정확하지 않은 것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을 하는데, 그러면 나도 뜨끔해서 다시 찾아보게 된다.
 
진위 여부를 알게 되면서 더 연구하게 된다. 질문 하나하나가 그냥 하는 것 같아도 강의 하는 제 입장에서는 그 점을 왜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지 싶다. 강의 끝나고 다시 살펴보는 과정에서 나도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그러한 것들을 서로 나누는 기쁨이 있다.
 
또 작은 모임들로도 갈라지면서 교제한다. 서로 말이 통하는 모임이 생기는 것이다. 말이 통한다는 것은 내 말을 이해한다 정도가 아니라 성향과 취향, 그것을 넘어 인품과 모든 행동들이 다 통한다는 의미이다. 적당한 비례로 거리를 두며 적당한 정신적 교재를 하는 것이다. 창조적이고 영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진 모임들 속에서 선하고 생산적인 일들로도 파생된다. 그게 바로 교양인들이 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 무르익게 될 때 '곱게 늙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Q. 이 모임으로 더 이루고 싶은 성취가 있다면.
 
창의적이고 생산적이고 선한 일들의 자극이 되는 장소가 된다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도 사실 상상도 못한 숫자이지만 서울이나 타지에서 더 오시는 분들이 생기길 바란다. 멀리서 와서라도 들어야 되겠다는 의욕이 생기는 강의로 발전하고 싶다.
 
Q. 교수님 스스로도 은퇴 이후의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보통 육체적인 건강이다. 그래서 운동도 하며 근육을 많이 키우려 노력한다. 그런데 사유의 근육을 키우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면 생각하는 근육이 점점 굳어간다. 몸은 살아있으면 뭐하나. 사유가 죽어가는데. 결국 속된 말로 꼰대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옛날에 근거 없이 알았던 것의 틀에 갇혀 꿈쩍않고 살아가는 것은 사유의 빈곤으로 가는 길이다. 빨리 벗어나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거기로 가고 만다. 반면, 사유의 기쁨, 사유의 희열을 알게 되면 사람으로서의 품위가 생긴다.
 
Q. 평생을 연구하며 사셨고 가르치며 사셨다. 좀 쉬고 싶으실 법도 한데.
 
뭘 하면서 쉬나. 내 직업은 학자다. 학자는 계속 연구하고 배우는 자다. 늘 학생들을 가르쳤어도 마음 속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뭔가 더 정확하고 유익한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지만 나의 시간적 한계와 연구 부족과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마음에 차게 하지는 못했다.지금 돌이켜 보면 내 자신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어렴풋이 알았던 것을 가르친 것도 많이 있었다. 이런 것을 남는 시간에 바로잡고 있다.
 
처음에는 퇴직 이후에 SNS를 통해서 못 다한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다시 정리해서 이야기 해주자. 자연스럽게 시간 날 때마다 읽어볼 수 있게 일종의 애프터 서비스를 해주자 싶어 밀렸던 공부를 다시 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됐다.
 
또 자식들 한테도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데 자식들을 불러서 말하는 것은 안 되니 편지를 쓰자하며 편지 형식으로 역사를 다시 정리하기도 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지금 이 강의를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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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교수님보다 배움이 짧고 경험이 얕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내세우기 바쁘다. 그럼에도 자꾸만 교수님은 스스로 내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나 역시 젊었을 때 그랬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지적 교만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 들어가면서 다시 책 들여다보면 또 하나씩 하나씩 허물어져가는 지금은 아예 그냥 드러내놓고 이야기 한다.
 
지금도 나는 그저 정리해서 알려주는 정도다. 언제든지 고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고 그게 또 사실이다.
 
Q. 끝으로 미학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고 싶다.
 
사실 난 이 강의를 미학강의라고 한 번도 이야기 한 적이 없다. 서양미술사 강의인데, 미술사강의를 하다보면 건축도 음악도 등장한다. 또 문학 이야기도 하게 되고, 음악과 미술, 건축, 문학은 또 다 사회에서 나오지 않나. 결국 문화도 이야기 하게 된다. 그러니 누군가는 미학으로 받아들이더라.
 
결국 나름대로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정의하는 것 같다. 미학이란 그만큼 폭이 넓다. 저에게 굳이 물어본다면, 미학이란 아름다운 관계, 관계의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나와 타자간의 관계, 그런 관계들의 아름다움의 비례. 그것을 연구하는 것이 궁극적인 미학이다.

배선영 데일리임팩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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